
파마를 하고 나서 머리가 오히려 더 이상해진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여러 번. 미용실 문을 나설 때는 분명 멋있었는데, 사흘 뒤 아침에 거울을 보면 사자 갈기도 아니고 생머리도 아닌 기묘한 상태가 되어 있는 그 배신감. 올겨울 남성 헤어 트렌드를 정리하면서 제가 직접 겪은 실패와 발견들을 솔직하게 나눠보겠습니다.
올겨울 남성 헤어, 어떤 스타일이 뜨고 있나
요즘 남성 헤어 트렌드의 핵심은 '인위적이지 않은 멋'입니다. 칼같이 세팅된 느낌보다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질감을 더 높이 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세미 히피 펌입니다. 여기서 세미 히피 펌이란 기존 히피 펌보다 컬의 강도를 낮추고, 가닥가닥 결이 살아있으면서도 러프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을 말합니다. 겨울 코트나 블레이저 재킷과 조합했을 때 머리로 포인트를 주기에 굉장히 좋고, 광대가 많이 나오거나 각진 얼굴을 가진 분들께는 얼굴형 보완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코끝까지 오는 기장이나 귀에서 5~6cm 내려오는 길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해보니 이 기장 범위에서 실제로 가장 자연스러운 컬이 나오더군요.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빈티지 펌입니다. 빈티지 펌이란 "파마를 했나, 아니면 그냥 저렇게 생긴 건가?" 싶은 모호한 컬 질감을 내는 스타일로, 세미픽 펌처럼 명확하게 '파마 티'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컬이 너무 강하면 부담스럽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특히 잘 맞고, 브라운 계열 염색과 조합하면 겨울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숱이 적은 분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슬릭 펌도 올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슬릭 펌이란 모발이 일직선으로 자연스럽게 뻗으면서 텍스처, 즉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질감이 가볍고 스트레이트 하게 표현되는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건 제 경험상 좀 다른 면이 있어서 아래에서 따로 짚겠습니다.
제품 믹싱이 파마 수명을 결정한다
파마 후 관리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제품 선택과 사용법입니다. 그냥 컬 크림 하나 쥐어짜서 발랐다가 정수리가 찰싹 달라붙어 버린 경험, 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핵심은 모질에 따라 제품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 모발이 굵고 힘이 있는 편이라면 폴리시 오일을 마지막에 발라 자연 건조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 모발이 얇고 힘이 없는 편이라면 컬 크림을 그대로 쓰지 않고 물과 희석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더 자연스러운 마무리를 원한다면 컬 크림과 폴리시 오일을 1:1로 섞은 뒤 드라이 후 발라주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폴리시 오일이란 헤어 전용 광택 오일로, 모발에 윤기를 더하면서 컬의 윤곽을 잡아주는 마무리 제품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크림과 오일을 섞는 조합 하나만으로 겨울 코트를 입었을 때 파마머리가 순식간에 '시크한 유광 질감'으로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파마 수명 자체가 달라집니다.
드라이 방법도 중요합니다. 타월 드라이로 5분간 물기를 충분히 흡수시킨 뒤 드라이기는 형태만 살짝 잡는 용도로 1~2분만 사용하는 것이 컬을 가장 탱글하게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뜨거운 바람을 오래 쐬면 컬의 결합 구조가 손상되어 파마가 빠르게 풀리는데, 이는 열 스타일링이 모발의 케라틴 단백질 결합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출처: 대한피부과학회). 손기술이 없는 분일수록 드라이기를 멀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건 제 경험으로도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미용실 가기 전, 이것만 알고 가세요
"사진 한 장 들고 갔다가 전혀 다른 머리로 나온 적 있으세요?"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같은 사진도 모질과 두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사진을 최소 세 장 이상 챙겨 가는 것입니다. 각도와 조명이 다른 레퍼런스 이미지를 여러 장 준비하면 디자이너가 원하는 방향을 훨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인스타그램에서 원하는 펌 스타일의 해시태그를 검색했을 때 해당 스타일 영상이 5개 이상 있는 계정을 찾아가는 것이 신뢰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가장 현실적인 팁은 컷트를 먼저 받고 마무리 드라이 단계에서 원하는 파마 스타일로 드라이를 요청해 보는 것입니다. 거울 속에서 그 형태가 어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다음에 이 스타일로 파마해 주세요"라고 하면 실패 확률이 거의 사라집니다. 소비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영리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솔직하게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모발이 얇을수록 제품 관리를 잘하면 유지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바쁜 아침에 매일 오일과 크림을 황금 비율로 섞고 자연 건조를 기다릴 수 있는 직장인이 현실적으로 몇 명이나 될까요. 관리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의 부지런함에 놓이는 구조인 셈입니다. 국내 성인 남성의 평균 출근 준비 시간은 20분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출처: 통계청), 파마 스타일을 선택할 때 '얼마나 관리할 수 있는가'를 먼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슬릭 펌이 유지 관리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겨울 남성 헤어의 완성은 파마를 잘 받는 것보다 그 이후 5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타월을 머리에 얹고 기다리는 그 5분이 파마 수명을 몇 주 단위로 늘리기도, 줄이기도 합니다. 내일 아침 그 여유가 있다고 느끼신다면,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원하는 스타일 영상을 5개 이상 올린 디자이너를 찾아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그 정성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